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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EAN 인사이트

[아세안 인사이트] 왜 그들은 양치질을 안 하고, 자동이체를 거부할까? (양 냄새와 불신의 사회학)

by 살기 좋은 말레시이아 2026.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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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들은 양치질을 안 하고, 자동이체를 거부할까? (양 냄새와 불신의 사회학)

한국과 다른 아세안의 독특한 문화를 '불신(Distrust)'과 '감각(Sense)'의 관점에서 해석합니다. 양고기 노린내를 즐기는 식문화, 화장실 뒷물(찹찹찹) 소리에 대한 공포, 그리고 시스템 오류를 믿지 못해 자동이체를 거부하는 현지인들의 심리를 한국 사회와 비교 분석합니다.

 

 

 

 

한국인만 느끼는 '위화감'의 실체

말레이시아(그리고 싱가포르, 인도네시아)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한국인만 유독 '이상하게' 여기는 두 가지 풍경이 있습니다. 하나, 점심 식사 후 화장실에서 양치질하는 사람이 없다. 둘, 매달 전기세, 수도세, 통신비를 편의점이나 우체국 가서 '수동'으로 낸다.

단순히 문화가 달라서일까요? 아닙니다. 이 두 가지 현상의 기저에는 '감각의 차이'와 뿌리 깊은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습니다. 오늘은 이방인의 시선으로 본 아세안의 '불신 사회'를 해부해 봅니다.

 

 

 

 

 


1. 후각의 장벽: "고기 잡내를 즐겨라" vs "피비린내를 없애라"

한국(특히 1990년 이전 출생자)의 미각은 '마늘 베이스'입니다. 우리는 요리의 핵심을 '잡내 제거'에 둡니다. 소고기 뭇국을 끓일 때도 핏물을 빼고, 생강과 마늘을 넣어 누린내를 완벽히 지웁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는 정반대입니다.

  • 마막(Mamak)의 양고기: 이곳 식당에서 양고기 커리(Kambing, Mutton)를 시키면, 마치 살아있는 양 옆을 지나갈 때 나는 그 특유의 '노린내 (Gamey flavor)'가 훅 치고 들어옵니다. 우리는 이걸 "역하다"고 느끼지만, 현지인들은 "풍미가 진하다"고 느낍니다. 그들은 커리 향신료를 들이부어도 그 뚫고 나오는 육향을 즐기는 것입니다. "한국인은 잡내를 없애려 애쓰지만, 이곳은 그 냄새 자체가 '고기의 영혼'이라고 믿는다. 마막의 양고기 커리는 향신료와 누린내가 서로 누가 더 센지 싸우는 맛이다."
  • 소고기 조미료: 한국의 다시다가 감칠맛을 낸다면, 이곳의 소고기 큐브는 '진짜 소 냄새'를 추가합니다.
  • 민물고기(Ikan Sungai)의 흙내: "파틴(Patin) 피쉬의 공포"
    • 상황: 말레이시아인들이 최고로 치는 민물고기 '이칸 파틴(Ikan Patin)' 요리(Tempoyak 등)를 접대받은 한국인의 반응입니다.
    • 차이: 현지인들은 민물고기 특유의 '흙냄새(Muddy smell, Bau Tanah)'를 즐깁니다. 심지어 그 냄새를 덮기 위해 두리안 발효장(Tempoyak)을 씁니다. (냄새+냄새의 폭발).
    • 한국인 반응: 흙냄새와 비린내 때문에 한 입 먹고 숟가락을 놓습니다. 한국 매운탕은 마늘과 쑥갓으로 비린내를 '살해'해버리는데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 닭고기(Ayam)의 색깔과 냄새: "왜 닭이 노란색이야?"
    • 한국: 하림 닭을 생각해보세요. 뽀얗고, 깨끗하게 손질되어 있고, 핏기가 없으며, 냄새가 거의 안 납니다. (Sanitized)
    • 말레이시아: 재래시장(Pasar)이나 마트 신선 코너에 가면 닭들이 노란색(Corn-fed chicken, Ayam Kampong 등)을 띠고 있고, 특유의 비릿한 생닭 냄새가 진동합니다.
    • 인사이트: 한국인은 닭을 '가공식품'처럼 대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닭의 '신선함(Rawness)'을 껍질의 색과 냄새로 확인하려 합니다. 털만 뽑힌 채 머리와 발이 그대로 달린 닭을 보며 "신선하네"라고 느끼는 현지인과, 비명을 지르는 한국인의 차이입니다.

이렇듯 '강한 향(향신료+원육의 냄새)'을 즐기는 문화권에서, 식사 후 입안에 남는 잔향은 한국인만큼 예민한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 냄새를 덮기 위해 민트향 치약을 쓰는 것이 그들의 미식 세계를 방해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2. 청각의 공포: "찹찹찹" 소리와 화장실 불신

하지만 더 큰 이유는 '공간에 대한 불신'입니다. 한국의 화장실은 '건식'을 지향하지만, 아세안의 화장실은 철저한 '습식(Wet Toilet)'입니다.

  • 뒷물의 소리: 볼일을 본 후 휴지 대신 물로 닦는 문화(Istinja). 옆 칸에서 들려오는 "찹찹찹" 물소리는 한국인에게 시각적 상상력을 자극하며 비위생적인 공포를 줍니다.
  • 수질 불신: 배관이 노후되어 녹물이 나오기 일쑤인 수돗물. 
  • 결론: "남이 뒷물하던 손을 씻은 세면대,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수돗물." 이 총체적인 불신 때문에 현지인들조차 공용 화장실에서 입을 벌리고 칫솔질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가글'이나 '치실'로 대신하며 자신을 보호합니다.

 

 

 

 


3. 시스템의 불신: "자동이체(Auto-debit)? 미쳤어?"

한국은 어떤가요? 정치적으로는 지역 갈등, 세대 갈등, 성별 갈등으로 서로 으르렁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시스템'은 맹신합니다. 전기세가 잘못 청구될 확률? 0.0001%도 안 된다고 믿기에 전 국민이 '자동이체'를 걸어둡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는 다릅니다.

  • 청구서의 공포: 이곳 교민들은 압니다. 통신사나 전력국(TNB)이 요금을 과청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을요.
  • 환불의 지옥: 한번 잘못 빠져나간 돈을 돌려받으려면 6개월 동안 전화를 돌려야 합니다. (아니, 못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귀찮아도 매달 청구서를 눈으로 확인하고, '내가 승인할 때만' 돈이 나가도록 합니다. "내 돈은 내가 지킨다. 시스템은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 이것이 다민족 국가에서 살아남은 그들의 생존 본능이자 '불신의 경제학'입니다.

 

 

비교 항목 한국 (고신뢰/효율) 싱가포르 (고신뢰/시스템)  말레이시아 (검증/불신)
인도네시아 (현금/대면)
선호 납부 방식 자동이체 (신용카드/계좌) GIRO (자동이체 시스템) FPX / JomPay (수동 이체)
OTC
(편의점/대면 납부)
자동이체 비율 85% 이상 (거의 기본값) 70% 이상 (정부 적극 권장) 20% 미만 (매우 낮음)
5% 미만 (극소수)
주요 심리 "귀찮게 왜 매달 챙겨? 알아서 나가겠지." "정부가 만든 GIRO 시스템은 안전해." "청구서 먼저 확인하고, 내가 승인 버튼 누를 거야."
"돈 주고 영수증(종이)을 바로 받아야 안심이 돼."
과청구 대응 고객센터 전화 → 즉시 환불/조정 (신속) 시스템 내 자동 조정 (신뢰) 지점 방문/장기 분쟁 (해결 불확실)
해결 매우 어려움 (포기)

한국 & 싱가포르: "Pull Payment (가져가라)"의 사회

  • 한국: 아파트 관리비, 전기세, 통신비가 자동이체 안 되어 있으면 '연체' 걱정부터 합니다. 시스템 오류 확률이 로또 당첨 확률보다 낮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 싱가포르: **GIRO(General Interbank Recurring Order)**라는 강력한 자동이체 시스템이 있습니다. 정부와 은행이 보증하므로 국민들이 의심 없이 "내 계좌에서 가져가라"고 허용합니다.

말레이시아: "Push Payment (내가 보낸다)"의 사회

  • FPX의 독주: 말레이시아 전자결제 시장에서 가장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FPX(Financial Process Exchange)**입니다.
    • 이는 자동이체가 아니라, 사용자가 매번 로그인해서 비밀번호를 치고 **'이체(Transfer)'**를 누르는 방식입니다.
  • JomPay의 인기: 고지서에 있는 코드를 보고 '내가 직접 입력해서' 돈을 보냅니다.
  • 이유: 사용자님 말씀대로입니다. **"TNB(전력국)나 Air Selangor(수도국)가 내 통장에 빨대를 꽂게 놔둘 수 없다"**는 강력한 불신이 깔려 있습니다. 실제로 교민 커뮤니티에는 "자동이체해 놨더니 이사 간 집 전기세가 6개월 동안 빠져나갔다"는 괴담이 돕니다.

인도네시아: "Cash is King (눈앞에서 확인)"의 사회

  • 편의점(Indomaret/Alfamart) 납부: 인도네시아에서는 공과금을 내러 슬리퍼 신고 편의점에 갑니다.
  • 이유: 은행 계좌 보유율이 낮은 탓도 있지만, 점원에게 현금을 주고, 바코드를 찍고, **'영수증 종이'**를 손에 쥐어야 비로소 "납부됐다"고 믿는 '촉각적 신뢰' 단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4. 결론: 한국의 '고 신뢰' vs 아세안의 '저 신뢰'

한국은 서로 미워하면서도, 밥 먹고 나면 다 같이 양치질을 하고(위생 신뢰), 통장 비밀번호를 공유하며(금융 신뢰), 밤새 술을 마셔도 지갑이 털리지 않는(치안 신뢰) 기묘한 '고 신뢰 사회'입니다.

반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는 겉으로는 "Satu Malaysia(하나의 말레이시아)"를 외치며 웃지만, 속으로는 양치 물조차 믿지 못하고, 자동이체도 걸지 않는 철저한 '각자도생의 불신 사회'입니다.

양고기의 노린내가 진동하는 마막에서 코를 막고 지나가는 한국인. 그것은 단순히 냄새 때문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깨끗함과 시스템" 속에서만 살아온 우리들의 '신토불이(身土不二) 본능'이 보내는 거부 반응 아닐까요?

"한국은 '정제(Refine)'된 사회고, 아세안은 '날것(Raw)'의 사회다."

한국인은 냄새도, 결제 시스템도, 행정도 모두 깔끔하게 정제되어 보이지 않는 상태(Invisible & Clean)를 선호합니다. 잡내는 제거되어야 하고, 공과금은 알아서 빠져나가야 합니다.

반면 말레이시아는 '확인 가능한 실체(Visible & Raw)'를 선호합니다. 고기는 고기 냄새가 나야 진짜고, 돈은 내가 직접 보내야 내 돈입니다. 양고기의 누린내가 훅 들어올 때, 그리고 매달 전기세 고지서를 내 손으로 낼 때, 저는 비로소 깨닫습니다. "아, 여기는 포장지로 덮인 한국이 아니라,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야생의 아세안이구나."

이곳에서 10년 넘게 살았지만, 저는 여전히 사무실 탕비실 정수기 물로 몰래 양치를 하고, 매달 전기세 고지서를 눈을 부릅뜨고 확인합니다. 로마에 왔지만, 로마법을 믿기엔 너무 '한국적'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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